난민에 관한 영화 3편

1편. <보그만 (Borgman, 2013)>
감독: 알렉스 반 바르메르담 (Alex van Warmerdam)
국가: 네덜란드
2편. <더 스위머스 (The Swimmers, 2022)>
감독: 샐리 엘 호사이니 (Sally El Hosaini)
국가: 영국, 미국
3편.<가버나움 (Capernaum, 2018)>
감독: 나딘 라바키 (Nadine Labaki)
국가: 레바논
세계는 지금 거대한 인구 이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전쟁, 기후변화, 정치적 억압, 경제적 빈곤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배경 속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이 거대한 이동의 물결은 단지 인구통계적인 변화가 아니라, 인류의 집단적 정체성과 윤리적 선택을 시험하는 도전이다.
<난민>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약자로서의 이미지로만 그려질 수 없다. 그들은 때로는 기회의 상징이자 도전의 아이콘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존재는 기존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문화, 경제, 정치적 충돌을 야기하기도 한다. 난민은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새로이 자리를 잡으려는 강력한 의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문을 두드리는 이방인이 아니라, 기존 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변화를 촉진하는 ‘이질적 타자’로서의 의미를 내포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이러한 복잡다단한 난민의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네덜란드의 심리적 서스펜스 스릴러 <보그만>으로,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난민이 아니라 기존 사회의 도덕적, 정체성적 균형을 파괴하는 ‘낯선 자’로서의 두려움을 다룬다. 두 번째는 스포츠와 희망의 상징을 담은 <더 스위머스>, 이 영화는 난민의 이야기를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간의 도전 정신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는 <가버나움>, 이는 난민이 처한 극한의 현실을 직시하며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난민 문제의 뿌리 깊은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이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난민이라는 존재가 단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자 변화를 촉발하는 힘임을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3편의 영화가 말하는  <난민>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지점은 어디인 지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1편. <보그만>(원제: Borgman, 2013)
보그만은 단순히 난민을 주제로 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 <보그만>의 깊은 상징성과 그 속에 담긴 인간 내면의 탐구는, 그 자체로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외부로부터의 침입자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서사를 통해 인간 본능 속 깊이 자리한 ‘낯선 자’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한 내용은 마치 현재 난민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즉 익숙한 삶이 흔들리고 기존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보그만과 난민: 침입자의 정체성
보그만의 캐릭터는 영화 초반부터 강력하게 “침입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는 불특정한 존재로, 그의 과거와 동기,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그는 가정에 침입해 그곳의 질서를 교란시키며, 집안의 인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의 존재는 점차, 인간 본능의 억제된 욕망과 폭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보그만의 침입이 단순한 물리적 침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바로 “정체성이 없는 침입자”라는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난민 역시 한 사회에 “침입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난민은 자신이 속한 고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도망쳐 온 존재지만, 종종 그들의 과거와 동기에 대한 정보는 불분명하다. 특히, 많은 경우 그들의 고향과 역사, 문화적 배경은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일으킬 수 있다. 사회가 그들을 “수용”할 때, 난민의 존재는 그 자체로 “질서의 위협”으로 비춰질 수 있다. 보그만이 가정에 침입하면서 기존 질서를 흔드는 것처럼, 난민 또한 새로운 사회에서 기존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사회적 억압과 난민의 정체성
<보그만>에서 보그만의 존재는 단순히 외부에서 침입한 인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억압된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삶에 침투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은 사회적 억압과 욕망의 갈등을 드러낸다. 이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억제된 욕망이 사회적 틀 안에서 어떻게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난민도 마찬가지로,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나아오지만, 그들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응과 수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종종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려 하며, 이를 통해 기존 사회의 틀과 충돌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난민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문화적 갈등은 <보그만>에서 보그만이 사회적 질서를 흔드는 방식과 유사하다. 난민은 종종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과도한 스트레스와 혼란을 겪으며, 새로운 사회에 “침입”하면서 기존 질서와 갈등을 일으킨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난민의 정체성과 위장
<보그만>에서 보그만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그의 능동적인 침입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위장”이다. 보그만은 자신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그는 침입자가 되어 가정의 질서를 교란시키면서, 그 자체로 무언가 더 복잡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는 바로 그가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나, 더 깊고 복잡한 존재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난민의 경우에도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초기에는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서 탈출한 피해자로서 다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존재가 단순한 피해자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새로운 사회에서 그들은 때로 “위장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문화적 차이, 행동 양식, 그리고 때로는 범죄와 결합된 이미지가 그들을 “사회적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이는 난민이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때로는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방식과 일치한다.
보그만이 피해자로 등장하지만 점차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로 변모하는 방식은, 난민이 피해자에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흔드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이런 변형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사회에 “침입”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불안감을 투영한다. 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결국 그들이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적 붕괴와 인간 본성의 탐구
<보그만>은 단순히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탈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와 개인의 욕망 간의 깊은 갈등을 그린다. 보그만의 존재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그가 침입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는 가정과 사회의 붕괴를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난민의 존재는 기존 사회의 질서가 침해받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의미한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붕괴된 질서”를 대표하는 존재로 묘사되며, 이로 인해 사회 내에서 더 큰 불안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사회적 붕괴는 단순히 물리적 질서의 문제를 넘어서, 그 사회가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보그만이 사회에 침입하여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난민이 새로운 사회에 도전하고 그것을 흔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충동을 자극하며, 사회적 규범이 과연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보그만>을 난민 문제에 비유하는 것은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욕망과 사회적 질서의 갈등을 보여주며, 그것이 난민 문제와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난민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보그만처럼, 난민은 때때로 그 자체로 사회적 위협으로 변모하며, 이는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불안과도 연결된다. 결국, 영화 <보그만>은 인간 본성과 사회적 질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보그만은 단순히 난민을 주제로 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 <보그만>의 깊은 상징성과 그 속에 담긴 인간 내면의 탐구는, 그 자체로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외부로부터의 침입자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서사를 통해 인간 본능 속 깊이 자리한 ‘낯선 자’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한 내용은 마치 현재 난민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즉 익숙한 삶이 흔들리고 기존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보그만과 난민: 침입자의 정체성
보그만의 캐릭터는 영화 초반부터 강력하게 “침입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그는 불특정한 존재로, 그의 과거와 동기, 그리고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그는 가정에 침입해 그곳의 질서를 교란시키며, 집안의 인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의 존재는 점차, 인간 본능의 억제된 욕망과 폭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보그만의 침입이 단순한 물리적 침범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바로 “정체성이 없는 침입자”라는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난민 역시 한 사회에 “침입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난민은 자신이 속한 고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도망쳐 온 존재지만, 종종 그들의 과거와 동기에 대한 정보는 불분명하다. 특히, 많은 경우 그들의 고향과 역사, 문화적 배경은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일으킬 수 있다. 사회가 그들을 “수용”할 때, 난민의 존재는 그 자체로 “질서의 위협”으로 비춰질 수 있다. 보그만이 가정에 침입하면서 기존 질서를 흔드는 것처럼, 난민 또한 새로운 사회에서 기존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사회적 억압과 난민의 정체성
<보그만>에서 보그만의 존재는 단순히 외부에서 침입한 인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억압된 욕망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삶에 침투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은 사회적 억압과 욕망의 갈등을 드러낸다. 이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억제된 욕망이 사회적 틀 안에서 어떻게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난민도 마찬가지로,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로 나아오지만, 그들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적응과 수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종종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려 하며, 이를 통해 기존 사회의 틀과 충돌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난민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문화적 갈등은 <보그만>에서 보그만이 사회적 질서를 흔드는 방식과 유사하다. 난민은 종종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과도한 스트레스와 혼란을 겪으며, 새로운 사회에 “침입”하면서 기존 질서와 갈등을 일으킨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난민의 정체성과 위장
<보그만>에서 보그만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그의 능동적인 침입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위장”이다. 보그만은 자신이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그는 침입자가 되어 가정의 질서를 교란시키면서, 그 자체로 무언가 더 복잡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는 바로 그가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나, 더 깊고 복잡한 존재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난민의 경우에도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초기에는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서 탈출한 피해자로서 다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존재가 단순한 피해자를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새로운 사회에서 그들은 때로 “위장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문화적 차이, 행동 양식, 그리고 때로는 범죄와 결합된 이미지가 그들을 “사회적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이는 난민이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때로는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방식과 일치한다.
보그만이 피해자로 등장하지만 점차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로 변모하는 방식은, 난민이 피해자에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흔드는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이런 변형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사회에 “침입”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불안감을 투영한다. 그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결국 그들이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적 붕괴와 인간 본성의 탐구
<보그만>은 단순히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일탈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와 개인의 욕망 간의 깊은 갈등을 그린다. 보그만의 존재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그가 침입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는 가정과 사회의 붕괴를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난민의 존재는 기존 사회의 질서가 침해받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을 의미한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붕괴된 질서”를 대표하는 존재로 묘사되며, 이로 인해 사회 내에서 더 큰 불안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사회적 붕괴는 단순히 물리적 질서의 문제를 넘어서, 그 사회가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보그만이 사회에 침입하여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난민이 새로운 사회에 도전하고 그것을 흔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충동을 자극하며, 사회적 규범이 과연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보그만>을 난민 문제에 비유하는 것은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욕망과 사회적 질서의 갈등을 보여주며, 그것이 난민 문제와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난민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보그만처럼, 난민은 때때로 그 자체로 사회적 위협으로 변모하며, 이는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불안과도 연결된다. 결국, 영화 <보그만>은 인간 본성과 사회적 질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2편. <더 스위머스 (The Swimmers, 2022)>

영화 <더 스위머스> (2022)은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희망과 인간의 연대, 그리고 삶의 복원력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시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엮여지는 과정을 통해 난민들의 인간적인 고통과 그들이 겪는 사회적, 심리적 도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화는 시린이라는 여성 난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린은 전쟁과 갈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게 된 인물로, 유럽으로 향하는 길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과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게 되었고, 난민 수용소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시린은 과거의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면서, 그 과정에서 겪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을 그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시린이 겪는 고통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시린은 난민 수용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서로를 돕고, 의지하면서 점차 공동체와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시린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녀가 이민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난민을 단지 피해자로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린은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극복하면서도,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다양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인간적인 재건을 이루려 한다. 영화는 난민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고통과 사회적 장애물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그들의 인내와 인간적인 힘을 부각시키며, 결국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난민과 희망의 서사: 고통을 넘어선 연대
<더 스위머스>는 난민에 대한 통상적인 서사에서 벗어나, 고통과 상실을 넘어서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그린 영화다. 전통적으로 난민을 다룬 영화들은 종종 그들의 절망적 상황을 강조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곤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시린을 비롯한 난민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심을 이룬다. 그들은 자신을 도와주는 이웃들과 함께, 물리적 어려움 외에도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해가며 점차 자신감을 되찾는다.
시린의 이야기는 이민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서사로도 읽을 수 있다. 많은 난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불안과 고통을 겪지만, <더 스위머스>는 이들이 단순히 ‘이주한 사람들’에 그치지 않으며, 각자 고유한 삶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는 난민이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그리며, 난민을 통한 연대와 상호 지원이 결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낯선 자”에 대한 수용과 변화의 가능성
이 영화에서 난민들은 “낯선 자”로서 처음에는 사회에서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린과 같은 인물들은 초기에는 사회적, 경제적 장벽에 직면하지만, 그들이 상호 지원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구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이러한 서사는, 난민이 단지 위험이나 불확실성을 가져오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임을 드러낸다.
영화는 난민을 통해 “낯선 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연대가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난민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주체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전통적인 난민 서사에서의 일방적인 희생자 이미지를 넘어서는 변화를 상징한다.
영화 <더 스위머스>는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도 어두운 현실을 그리기보다는 그 속에서 희망과 인간의 복원력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시린의 이야기는 난민이 겪는 고통을 뛰어넘어, 그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자리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난민을 단순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기존의 서사에서 벗어나, 그들이 가진 가능성과 연대의 힘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난민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더 스위머스>는 난민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3편.<가버나움 (Capernaum, 2018)>

영화 <가버나움> (2018)은 난민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면서도 그 문제를 개인적이고 심도 깊은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레바논의 감독인 나딘 라바키의 이 영화는 단순히 난민에 대한 고통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처한 극한 상황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갈등을 중심으로 진지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가버나움>은 결국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질문하며, 특히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가버나움>은 12살 소년 ‘자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인은 레바논의 빈민가에서 불법적으로 태어난 아이로, 부모와의 관계도 불안정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인은 이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안정망 없이 살아간다.
영화는 자인이 가족을 떠나, 그가 겪는 고통과 갈등을 통해 시작된다. 자인은 결국 부모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부모가 자신을 낳고 길러준 것에 대해 법정에서 책임을 묻기 위해 싸운다. 영화는 자인이 자신을 책임지지 않은 부모와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고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 자인의 고발에 그치지 않고, 그가 살고 있는 빈민가의 삶을 세밀하게 조망하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자인은 길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여성 ‘라일라’와 함께 일자리를 찾고, 또 그녀의 아기를 돌보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연대와 희망을 발견하려 한다. 영화는 자인과 라일라,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서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그려낸다.
난민과 고통의 서사: 절망 속에서의 희망
<가버나움>은 난민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어낸다. 자인의 삶은 사실상 난민으로서의 삶을 상징한다. 그의 부모는 이민자이고, 자인 또한 그들의 불법적인 존재로서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간다. 자인은 사회적 안전망을 벗어나, 스스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는 자인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그 속에서 여전히 인간적인 희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난민들이 겪는 고통을 단순한 피해자의 시각에서 그리지 않는다. 자인은 비록 불법 이민자의 자녀이지만, 그는 단지 수동적으로 고통을 겪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꾸고, 사회적 부조리와 싸우려고 하는 적극적인 인물이다. 자인의 투쟁은 자신을 버린 부모와, 그를 돌보지 않는 사회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다. 이는 난민들이 처한 현실에서의 무기력한 상황을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과,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낯선 자”의 고통과 무책임한 사회
영화에서 자인은 스스로 존재감을 찾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인의 부모는 경제적 이유로 자식을 방치하고, 사회는 그들을 돕지 않는다. 그가 가진 유일한 보호는 그 자신뿐이다. 이 영화는 난민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사회가 얼마나 그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자인과 같은 아이들은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살아남아야만 한다.
난민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낯선 자”에 대한 두려움은 이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자인과 라일라 같은 인물들은 사회에서 낯선 자로 존재하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협적일 수 있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불안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의 존재가 단지 위협적이지 않으며, 그들 역시 인간적인 권리와 희망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난민과 같은 외부인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사회가 얼마나 그들을 무책임하게 대하는지 묻고, 더 나아가 그들이 받아야 할 인간적인 존엄성을 부여할 것을 요구한다.
<가버나움>은 난민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한정짓지 않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깊이 있게 탐구한다. 자인의 이야기는 단지 가난하고 고통받는 아이의 서사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그린 이야기이다. 영화는 난민들이 겪는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그들의 존재가 단지 피해자에 그치지 않음을, 오히려 그들이 사회를 향한 강력한 저항과 인간적인 투쟁을 통해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난민 문제에 대해 우리가 지닌 통상적인 시각을 뛰어넘어, 그들이 처한 현실을 보다 인간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가버나움>은 결국, 인간 존엄성의 회복을 위한 투쟁이자,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책임을 물어보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